제1부 낯선 근대의 거리, 불편한 역사의 현장
1. ‘통감관저’, 잊혀진 경술국치의 현장
-그곳에는 이제 어떠한 흔적이 남아 있을까?
2. 조선총독부, 남산 왜성대에 우뚝 솟다
-과학의 요람으로 사라진 식민통치 권력의 본거지
3. 누가 인왕산에 ‘동아청년단결’이란 바위글씨를 새겼나?
-1939년 제15회 대일본청년단대회가 남긴 뼈아픈 상처
4. 왜 하필 매국노의 집터에서 독립선언은 이뤄졌을까?
-삼일만세사건의 현장인 ‘명월관지점’ 혹은 ‘태화관’의 내력
5. 독립관(獨立館), 결국 매국노 송병준의 담배공장이 되다
-일진회(一進會) 일당의 소굴로 변한 독립관의 내력
6. 대한제국 궁내부의 게스트 하우스, 주차장터로 남다
-한국주차일본군사령관저였던 대관정(大觀亭)의 내력
7. 을사조약의 현장 수옥헌(漱玉軒) 혹은 중명전(重明殿)의 내력
-현존하는 덕수궁 중명전 건물은 과연 언제 건립되었을까?
제2부 섣부른 역사고증, 때로 만들어진 전통
8. 누가 자꾸 ‘원구단’을 ‘환구단’이라 우기는가?
-‘?’이라는 글자의 소릿값에 대한 오해와 진실
9. 저 돌북은 왜 황궁우 옆에 놓여 있을까?
-원구단, 황궁우, 석고단, 조선호텔이 어우러진 공간
10. 대한제국의 제1호 법률이 도량형법, 과연 맞나?
-당시의 법령체계를 잘못 이해한 공허한 ‘최초’ 주장
11. 대한제국 시절 전차 개통, 동양 최초 맞나?
-도쿄보다 빠르지만 교토보다는 늦었던 서울의 전차 부설
12. 남대문 홍예의 통로바닥이 높아진 것이 전차 때문?
-명확한 자료고증 없는 성급한 복원 시도는 역사 훼손
13. 고종황제 가족사진, ‘조작’됐다
-박물관에서 퇴출되어야 할 엉터리 역사자료
제3부 땅 이름에 관한 오해 혹은 진실
14. ‘호미곶(虎尾串)’, 암만 봐도 억지스런 땅 이름
-동을배곶은 왜 난데없이 호미곶으로 둔갑했나?
15. 가수 배호는 ‘삼각지(三角地)’의 유래를 알았을까?
-일제가 이 땅에 남겨놓은 ‘세모꼴’ 지명의 흔적
16. 창덕궁과 남산총독부를 잇는 가교, 관수교(觀水橋)
-청계천 관수교라는 이름의 부활은 과연 합당한가?
17. 인천 송도(松島)는 과연 또 다른 왜색지명일까?
-대전?목포?청진에도 ‘송도정(松島町)’이 있었다
18. 과연 유릉(裕陵) 때문에 ‘능동(陵洞)’이 생겨났을까?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능동의 지명 유래에 대한 재검토
19. 왜색지명 ‘태합굴’, 잠시 세상을 시끄럽게 하다
-이른바 ‘통영태합굴해저도로’에 대한 자료 고증
제4부 뒤틀어진 식민지시대의 일상 속에서
20. 국회의원의 봉급은 왜 세비(歲費)라고 부르나?
-그 뿌리는 1889년의 일본제국 ‘의원법(議院法)’(?)
21. 대일본제국, 마침내 시간마저 점령하다
-동경 135도, 그리고 일본·조선·만주·대만의 표준시
22. 80년 전에도 ‘우량아선발대회’는 있었다
-첫 공식 대회는 1928년 매일신보 주최 ‘유유아심사회’
23. “덕수궁 전하께오서 옥돌에 재미를 붙이샤......”
-망국의 황제는 어떻게 소일하였나?
1. ‘통감관저’, 잊혀진 경술국치의 현장
-그곳에는 이제 어떠한 흔적이 남아 있을까?
2. 조선총독부, 남산 왜성대에 우뚝 솟다
-과학의 요람으로 사라진 식민통치 권력의 본거지
3. 누가 인왕산에 ‘동아청년단결’이란 바위글씨를 새겼나?
-1939년 제15회 대일본청년단대회가 남긴 뼈아픈 상처
4. 왜 하필 매국노의 집터에서 독립선언은 이뤄졌을까?
-삼일만세사건의 현장인 ‘명월관지점’ 혹은 ‘태화관’의 내력
5. 독립관(獨立館), 결국 매국노 송병준의 담배공장이 되다
-일진회(一進會) 일당의 소굴로 변한 독립관의 내력
6. 대한제국 궁내부의 게스트 하우스, 주차장터로 남다
-한국주차일본군사령관저였던 대관정(大觀亭)의 내력
7. 을사조약의 현장 수옥헌(漱玉軒) 혹은 중명전(重明殿)의 내력
-현존하는 덕수궁 중명전 건물은 과연 언제 건립되었을까?
제2부 섣부른 역사고증, 때로 만들어진 전통
8. 누가 자꾸 ‘원구단’을 ‘환구단’이라 우기는가?
-‘?’이라는 글자의 소릿값에 대한 오해와 진실
9. 저 돌북은 왜 황궁우 옆에 놓여 있을까?
-원구단, 황궁우, 석고단, 조선호텔이 어우러진 공간
10. 대한제국의 제1호 법률이 도량형법, 과연 맞나?
-당시의 법령체계를 잘못 이해한 공허한 ‘최초’ 주장
11. 대한제국 시절 전차 개통, 동양 최초 맞나?
-도쿄보다 빠르지만 교토보다는 늦었던 서울의 전차 부설
12. 남대문 홍예의 통로바닥이 높아진 것이 전차 때문?
-명확한 자료고증 없는 성급한 복원 시도는 역사 훼손
13. 고종황제 가족사진, ‘조작’됐다
-박물관에서 퇴출되어야 할 엉터리 역사자료
제3부 땅 이름에 관한 오해 혹은 진실
14. ‘호미곶(虎尾串)’, 암만 봐도 억지스런 땅 이름
-동을배곶은 왜 난데없이 호미곶으로 둔갑했나?
15. 가수 배호는 ‘삼각지(三角地)’의 유래를 알았을까?
-일제가 이 땅에 남겨놓은 ‘세모꼴’ 지명의 흔적
16. 창덕궁과 남산총독부를 잇는 가교, 관수교(觀水橋)
-청계천 관수교라는 이름의 부활은 과연 합당한가?
17. 인천 송도(松島)는 과연 또 다른 왜색지명일까?
-대전?목포?청진에도 ‘송도정(松島町)’이 있었다
18. 과연 유릉(裕陵) 때문에 ‘능동(陵洞)’이 생겨났을까?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능동의 지명 유래에 대한 재검토
19. 왜색지명 ‘태합굴’, 잠시 세상을 시끄럽게 하다
-이른바 ‘통영태합굴해저도로’에 대한 자료 고증
제4부 뒤틀어진 식민지시대의 일상 속에서
20. 국회의원의 봉급은 왜 세비(歲費)라고 부르나?
-그 뿌리는 1889년의 일본제국 ‘의원법(議院法)’(?)
21. 대일본제국, 마침내 시간마저 점령하다
-동경 135도, 그리고 일본·조선·만주·대만의 표준시
22. 80년 전에도 ‘우량아선발대회’는 있었다
-첫 공식 대회는 1928년 매일신보 주최 ‘유유아심사회’
23. “덕수궁 전하께오서 옥돌에 재미를 붙이샤......”
-망국의 황제는 어떻게 소일하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