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유희
저자 유희는 1773년 윤3월 27일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매산리(옛날 馬山이며, 속칭 ‘말미’) 옛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유한규(柳漢奎, 1718∼1783)는 당시 56세였고, 어머니 사주당[師朱堂(주자를 스승 삼는 집이라는 뜻), 1739∼1821]은 35세였다. 유희의 자는 계중(戒仲)이고, 어릴 때 이름은 경(儆)이며, 40세가 넘은 뒤에 희(僖)로 고쳤다. 호는 서파(西陂)·방편자(方便子)·남악(南岳)·단구(丹邱)·관청농부(觀靑農夫)·부옹(否翁) 등이다. 유희는 일찍 한자와 한문을 깨우쳐서 7세 때 사략과 통감을 통독했고, 15세 때 주역의 이치를 깨달았다. 1783년 11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예도에 맞게 상주 도리를 다했다. 1790년(정조 14년) 18세 때 소과 초시에 입격했지만, 벼슬에 뜻을 두지 말라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학문과 농사일에만 전념했다. 37세 때에는 충청도 단양 산골 속으로 들어갔고, 마침 큰 흉년과 홍경래 난을 무사히 넘겼다. 47세 때 다시 용인 옛집으로 되돌아갔고, 49세 때 83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1824년(순조 24년) 52세 때에, 옛날에 만들어 둔 원고를 그만 분실해, 다시 ≪언문지≫를 지었다. 이를 절친한 친구인 석천 신작에게도 보여 주었다. 1825년 53세 때 과거를 보라는 둘째 누나의 권유에 못 이겨, 생원 소과인 을유 사마방에 응시해 입격했다. 1829년(순조 29년) 57세 때 순종의 왕세자가 춘당대에 직접 와서 성균관 유생들에게 감귤을 내려 주고서 글을 짓도록 하는 감제시에 ‘3하’로 입격, 회시(복시)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문과방목에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 회시에 급제하지는 않은 듯하다. 유희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했고, 거의 100권에 이르는 원고를 남겼다. 1837년(헌종 3년) 2월 초1일 65세를 일기로,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남악 새집에서 세상을 버렸다.
역자 : 김지홍
역자 김지홍은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8년 이래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있다. 저서로 ≪언어의 심층과 언어 교육≫(도서출판 경진, 2010), ≪국어 통사·의미론의 몇 측면≫(도서출판 경진, 2010), ≪내포문으로서의 부사형 어미 구문 논증≫(도서출판 경진, 출간 예정)이 있고, 번역서로 ≪옥스포드 언어 교육 지침서≫ 듣기·말하기·쓰기·읽기·어휘·문법·담화·평가(전8권, 범문사, 2003), 학술진흥재단의 명저 번역으로 출간한 르펠트의 ≪말하기: 그 의도에서 조음까지≫ 1·2(나남, 2008)가 있다. 또한 월리스의 ≪언어 교육 현장 조사 연구≫(나라말, 2009), 클락의 ≪언어 사용 밑바닥에 깔린 원리≫(도서출판 경진, 2009), 머카씨의 ≪입말과 담화 중심 언어교육≫(도서출판 경진, 2009), 장한철의 ≪표해록≫(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최부 표해록≫(지식을만드는지식, 2010) 등이 있다.
저자 유희는 1773년 윤3월 27일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매산리(옛날 馬山이며, 속칭 ‘말미’) 옛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유한규(柳漢奎, 1718∼1783)는 당시 56세였고, 어머니 사주당[師朱堂(주자를 스승 삼는 집이라는 뜻), 1739∼1821]은 35세였다. 유희의 자는 계중(戒仲)이고, 어릴 때 이름은 경(儆)이며, 40세가 넘은 뒤에 희(僖)로 고쳤다. 호는 서파(西陂)·방편자(方便子)·남악(南岳)·단구(丹邱)·관청농부(觀靑農夫)·부옹(否翁) 등이다. 유희는 일찍 한자와 한문을 깨우쳐서 7세 때 사략과 통감을 통독했고, 15세 때 주역의 이치를 깨달았다. 1783년 11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예도에 맞게 상주 도리를 다했다. 1790년(정조 14년) 18세 때 소과 초시에 입격했지만, 벼슬에 뜻을 두지 말라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학문과 농사일에만 전념했다. 37세 때에는 충청도 단양 산골 속으로 들어갔고, 마침 큰 흉년과 홍경래 난을 무사히 넘겼다. 47세 때 다시 용인 옛집으로 되돌아갔고, 49세 때 83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1824년(순조 24년) 52세 때에, 옛날에 만들어 둔 원고를 그만 분실해, 다시 ≪언문지≫를 지었다. 이를 절친한 친구인 석천 신작에게도 보여 주었다. 1825년 53세 때 과거를 보라는 둘째 누나의 권유에 못 이겨, 생원 소과인 을유 사마방에 응시해 입격했다. 1829년(순조 29년) 57세 때 순종의 왕세자가 춘당대에 직접 와서 성균관 유생들에게 감귤을 내려 주고서 글을 짓도록 하는 감제시에 ‘3하’로 입격, 회시(복시)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문과방목에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 회시에 급제하지는 않은 듯하다. 유희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했고, 거의 100권에 이르는 원고를 남겼다. 1837년(헌종 3년) 2월 초1일 65세를 일기로,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남악 새집에서 세상을 버렸다.
역자 : 김지홍
역자 김지홍은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8년 이래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있다. 저서로 ≪언어의 심층과 언어 교육≫(도서출판 경진, 2010), ≪국어 통사·의미론의 몇 측면≫(도서출판 경진, 2010), ≪내포문으로서의 부사형 어미 구문 논증≫(도서출판 경진, 출간 예정)이 있고, 번역서로 ≪옥스포드 언어 교육 지침서≫ 듣기·말하기·쓰기·읽기·어휘·문법·담화·평가(전8권, 범문사, 2003), 학술진흥재단의 명저 번역으로 출간한 르펠트의 ≪말하기: 그 의도에서 조음까지≫ 1·2(나남, 2008)가 있다. 또한 월리스의 ≪언어 교육 현장 조사 연구≫(나라말, 2009), 클락의 ≪언어 사용 밑바닥에 깔린 원리≫(도서출판 경진, 2009), 머카씨의 ≪입말과 담화 중심 언어교육≫(도서출판 경진, 2009), 장한철의 ≪표해록≫(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최부 표해록≫(지식을만드는지식, 201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