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2000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김종호의 두 번째 소설집. 작가는 첫 소설집 [검은 소설이 보내다]을 통해 형이상학적 사변과 장대한 신화적 상상력, 한없는 의미의 지연과 서사적 구조의 완결성을 스스로 거부하는 듯한 스타일로 자신만의 문학상을 제시해왔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글 쓰는 행위를 통해 문학(소설)의 또 다른 정체성과 언어의 다른 영역, 세계-바깥의 언어 너머를 탐구하는 연작 단편을 선보인다. 소설은 글을 쓰는 어떤 화자 ''나''의 얘기로 시작한다. ''나''는 ''너-그녀''가 떠나가자 그 상실감을 메우려 글을 쓴다. 글을 씀으로써 그녀와 다시 만날 방법을 모색하지만 쉽지 않다.

글을 쓰는 도중에 자유로운 상상력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을 체험하며, 예전에 없던 몸의 변화도 생겨나게 된다. 글 쓰는 행위를 체험하면서 느끼게 되는 환각의 세계를 맛보는 ''나''는 ''그것''을 끊임없이 느끼며 관찰한다. 씀으로써 보여줄 수 있는 ''나''의 모습이 존재하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시ㆍ공간을 넘나들며 주체적 행위자로서 ''그것''에 기인한 ''그곳''이 소설 안에 존재한다. 그것이 문학의 윤리 혹은 음란함과 불순함에 관련되어지면서 소설은 또 다른 정체성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