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잃어버린 기억의 의미와 삶의 복원

개인의 삶에 각인된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모순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꾸준하게 발표해 온 정지아가 4년만에 선보인 신작 소설집. 2006년 제7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단편 「풍경」을 포함하여 발표 당시부터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일상과 심리를 탐색해 변주하던 전작과 달리 편편이 폭넓은 사유와 인생에 대한 깨달음으로 주제의 무게와 깊이가 더해진 것이 특징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치매''를 겪는 노년의 삶에서 잃어버린 기억의 의미를 찾고 삶을 복원하여 역사에 맥락화하는 단편들이 눈에 띈다. ''해가 뜨면 새로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듯'' 60년을 살아온 「풍경」의 주인공을 비롯해, 빨치산이던 남편을 따라 산에 오르고, 첫아이를 눈물로 보내고, 평생 남편을 하늘같이 믿고 따라온 아낙이 기억을 잃은 남편 옆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한 속내를 넋두리로 늘어놓는 「세월」등이 그것이다.

한많은 평생의 기억을 잃고 자신의 존재조차 잊는 노년의 애틋한 정서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들 외에도 미묘한 인생과 인연의 여러 국면을 다채롭게 그려낸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우연히 산행길에서 만난 한날한시에 태어난 동명이인인 주인공 ''김기영''을 중심으로 길을 떠난 자와 남아 있는 자의 입장을 엇갈리게 그려낸 연작 「길 1·2」, 어린시절부터 어둡기만 한 가족사의 운명을 온몸으로 겪었기에 운명처럼 반복되는 인연을 거부하고자 하지만 끝내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야기를 그린 「운명」등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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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초기부터 작가 정지아의 작품세계의 주조를 이뤘던 역사적 모순에서 비롯된 개인적 삶의 희생과 질곡이라는 무거운 주제의식이 이번 작품집에 이르러서는 늙는다는 것, 기억을 잃는다는 것, 삶을 복원한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품들에 녹아들어 있다. 부모와 자신의 지나간 삶을 반추하고 복원하는 시선과 수많은 경험에서 이룩한 사유의 세계를 통해 작가는 모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감성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