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내가 생애 내내 간절히 소망해 온 것은 ''도망''이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구성원인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잇는지를 다른 시선으로 접근한 유순하 장편 소설. 며느리가 우연히 시아버지의 기록을 읽는 형태로 진행되는 소설은 가족 공동체 안의 다면 관계(아버지와 아들, 시댁 식구와 며느리, 형제들 사이)가 맞닥뜨릴 수 있는 갖가지 모양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상준은 50대의 전직 교사이다. 그는 둘째 아들이지만, 아버지와 절연한 형을 대신하여 지금껏 부모님을 모셔 왔다. 8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중풍에 치매 증상까지 겹쳐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요양원의 아버지는 예전과는 딴판인 사람이 되었다.

지독한 독선과 광폭한 성격으로 집안을 갈가리 찢어 놓았던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불쌍하고 유순한 노인일 뿐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간 지속된 폭군의 행악으로, 이미 집안은 풍비박산이다. 자신은 아이들에게 그런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상준의 굴종은 상준과 그 아이들,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까지 악화시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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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전작 [아주 먼 길]과 마찬가지로 어긋난 가족관계에서 비롯된 삶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부정적인 관계의 무수한 뒤틀림 속에서도 가족이 해체해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변형을 주장하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시간은 그대로 진행되고, 삶은 계속 유지된다는 명징한 사실 앞에서 현실을 직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