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어둠과 기억, 그 화해의 공간

인생에 대한 저항과 지적 날카로움으로 빚어낸 채희윤 소설집. ''표준어와 사투리어 접점에 놓인 어법을 눈부시게 구사하는 작가'' 채희윤이 8년 만에 내놓은 네 번째 작품집으로, 여덟 편의 중ㆍ단편들에 작가 특유의 소설적 개성이 잘 녹아져 있다.

표제작 [곰보 아재]는 누나의 결혼식 날 허름한 여관방에서 홀로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자신에 비해 지나치게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맞았던 곰보 아재에 대한 기억, 그의 사체를 가매장한 채 오랫동안 내버려 두고, 그의 아내와 딸을 내쫓았으며, 그리고 오랫동안 그들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사실에 대한 죄의식이, 곰보 아재의 딸이라는 여자와 함께 평화로운 일상의 표면 위로 떠오른다.

염산으로 가는 길의 메마른 풍경과 화려한 동백꽃, 한적한 어촌의 초라한 모습이 잘 어우러진 [염산에 가다]에서는 자신의 혼외 임신이 기억 속의 처참한 가족을 재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화자의 두려움이 밀도 있게 묘사된다. [칼 벼리는 바]에서는 순수문학을 꿈꾸는 작가, 그녀가 대소변을 받아 내야 하는 요도가 잘린 노인 환자를 통해 다양한 사랑의 의미를 탐색한다. [양장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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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만나고, 자신의 몸속에 내장된 어둠의 습성과 화해하고, 자신이 강간했던 여자에 대한 기억을 인정한다. 그들은 어둠 속에 스스로 유폐해 버렸던 기억들, 일상의 안온을 순식간에 파괴해 버릴지도 모르는 바로 그 기억 속 존재들과 화해하기 위해 애쓴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제 아무리 불안하고 공포스럽다 할지라도 결국엔 그 존재를 인정하고, 긍정하고, 품어 안아야 한다는 용기를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