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차고 넘치는 슬픔과 허무를 견디는 리듬

송진권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자라는 돌』. 2004년 창비신인시인상에 ‘절골’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저자는 이번 시집에서 슬픔으로 만연한 허무의 세계를 고유한 질서를 지닌 리듬의 세계로 변환시키려는 의지를 드러내며, 이를 통해 생 자체의 질서와 리듬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다. 그윽함과 아늑함과 슬픔과 상처들이 하염없이 펼쳐지며 흘러갈 수 있는지를 공간적으로 전개한 연작시 ‘못골’과 함께 서정적인 문법과 서정시의 전통을 아우르는 참신함이 담긴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이으으으응’, ‘니나노 난실로’ 등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이윽고

그가 물 밖으로 나왔다
아가미가 있던 자리가 봉해지고
온몸의 비늘들 하얗게 부서져내렸다

후―
숨을 몰아쉬자 물 위로 별들이 돋아났다
그는 허리를 구부려 귀퉁이가 깨진 달을 주워들었다

목이 긴 새들이 날아가고
그는 옷을 입고 신을 신고 지팡이 쥔 채 떠나갔다

이윽고
물에서 악취가 나고
배를 드러낸 물고기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곳의 나무들은 큰 나무에서 작은 나무에 이르기까지
모두 억센 가시를 지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