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차가운 심장을 울렁이게 하는 뜨거운 심장의 노래!

한국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문학동네시인선」특별판 제2권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그리움이 차오르지 않으면 뱉어낼 수 없는 말들로 한국 시단에 고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허수경 시인의 시집이다. [실천문학]으로 데뷔한 허수경 시인은 여자가 아닌 여성의 목소리로 세상사의 많은 슬픔과 비애를 표출해 왔다. 특히 그녀는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살아오면서도 도저히 삼킬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우리의 언어로 노래해왔다. 시인은 타향살이를 바탕으로 더욱 견고해지고 넓어진 시야가 담긴 총 54편의 시를 소개한다. 각각의 시안에는 삶을 다 살고 났을 때 내가 살아낸 것이 과연 무엇인가 다시금 삶을 반추하게 하는 힘이 담겨 있다.

☞ 북소믈리에 한마디!
「문학동네시인선」은 한국시의 가장 모험적인 가능성들을 적극 발굴하겠다는 포부로 1년 반 동안의 기획 기간을 거쳐 선보이는 시리즈이다. 특히 관행처럼 굳어진 시집 판형을 파격적으로 달리하여, 고전적인 형태를 벗어나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의 맛을 살리고 있다. 이번 시리즈의 1차분으로 선정된 허수경 시인의 시집은 뿌리의 끝을 탐색하고, 세상의 온갖 자잘한 떨림과 흔들림을 기록해 비틀하는 순간의 균열을 아픔의 언어로 그려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이름 없는 섬들에 살던 많은 짐승들이 죽어가는 세월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이지요?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어느 백인 장교의 명령 같지 않나요
이름 없는 세월을 나는 이렇게 정의해요

아님, 말 못하는 것들이라 영혼이 없다고 말하던
근대 입구의 세월 속에
당신, 아직도 울고 있나요?

오늘도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읍을 지나
신시를 짓는 장군들을 보았어요
나는 그 장군들이 이 지상에 올 때
신시의 해안에 살던
도롱뇽 새끼가 저문 눈을 껌벅거리며
달의 운석처럼 낯선 시간처럼
날 바라보는 것을 보았어요

그때면 나는 당신이 바라보던 달걀 프라이였어요
내가 태어나 당신이 죽고
죽은 당신의 단백질과 기름으로
말하는 짐승인 내가 자라는 거지요

이거 긴 세기의 이야기지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이야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