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절망과 위기를 넘어 솟아오르는 진정한 희망!

[지상에 숟가락 하나]의 작가 현기영이 10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누란』. 잊혀진 우리 현대사의 이면을 조명해온 작가가 2003년부터 구상과 집필을 시작해 완성한 작품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던 1980년대에 청춘을 보낸 386세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물신주의와 배금주의에 지배당하게 된 오늘의 세태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87년 6월항쟁에 가담했던 주인공 허무성은 오랜 수배생활 끝에 검거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다. 결국 그는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과 운동조직에 대해 자백하고, 자신을 고문했던 김일강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한다. 역사를 전공한 허무성은 귀국 후 김일강의 사촌이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고, 김일강은 국회의원이 된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관계를 맺으며 김일강의 정신적 노예가 된 허무성. 그는 자신의 무기력한 현실과 고문의 기억으로 인한 공포, 배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데…. 한때 사회변혁의 중심이었다가 이제 기성세대가 된 386세대와, 부족한 것 없는 성장기를 거쳐 무비판적이고 무감한 오늘날의 젊은이들. 작가는 두 세대를 대비시키면서, 시대가 변해도 지켜야 할 가치와 청춘의 열정이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들을 던진다.

☞ 작품 조금 더 살펴보기!
이 소설은 고대 왕국 누란을 삼켜버린 황사처럼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무비판적 대중열기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작가는 에세이 같은 형식으로 우리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에 던지는 우려를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그 철저한 절망으로 바닥을 치고 나면 진정한 희망을 발견할 것이라는 바람도 전하고 있다. 선 굵은 서사와 작가 특유의 중후한 문체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