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조차 사치스러웠지만 그래도 나는 내일을 꿈꾸었다"
1972년 파독 간호사로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의사가 되기까지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국가 채무에 대한 담보로 독일로 간 파독 광부들과 파독 간호사들. 당시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가난에 허덕이는 가족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나라를 위해, 그리고 장래를 위한 기회를 얻기 위해 낯선 땅으로 향했다. 그들은 문화가 전혀 다른 먼 외국에서, 낯선 독일 생활과 언어의 장벽을 극복해가며 각기 다른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저자 이영숙은 1972년 파독 간호사로 독일 땅을 밟고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어왔다.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입국한 그녀는 독일 에센의 카톨릭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 의과대학에 입학 후 뇌종양을 앓고 있던 독일인 남편과 가정을 꾸렸지만, 뇌종양 재발로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을 키웠다.
독일인들과의 경쟁 속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애썼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서 개인병원을 개원했다. 생활이 안정되어가던 즈음, 폐암과 뇌종양을 동시에 진단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후 방사선 치료를 받고 병원을 계속 운영했으나, 2007년 척추암을 진단받고 개인병원을 닫는다. 현재는 건강한 상태로 신앙생활에 힘쓰고 있다.
☞저자 약력
1972년 독엘 에센 병원 간호보조사로 취업
1978년 튀빙겐 대학 의과대학 입학
1981년 뇌종양을 앓던 남편 유르겐과 결혼
1987년 뇌종양 재발로 남편 사망
1993년 튀빙겐에서 개인병원 개원
2005년 남편과 유사한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
2009년 척추암을 이겨내고 독일에서 생활 중
1972년 파독 간호사로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의사가 되기까지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국가 채무에 대한 담보로 독일로 간 파독 광부들과 파독 간호사들. 당시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가난에 허덕이는 가족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나라를 위해, 그리고 장래를 위한 기회를 얻기 위해 낯선 땅으로 향했다. 그들은 문화가 전혀 다른 먼 외국에서, 낯선 독일 생활과 언어의 장벽을 극복해가며 각기 다른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저자 이영숙은 1972년 파독 간호사로 독일 땅을 밟고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어왔다.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입국한 그녀는 독일 에센의 카톨릭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 의과대학에 입학 후 뇌종양을 앓고 있던 독일인 남편과 가정을 꾸렸지만, 뇌종양 재발로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을 키웠다.
독일인들과의 경쟁 속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애썼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서 개인병원을 개원했다. 생활이 안정되어가던 즈음, 폐암과 뇌종양을 동시에 진단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후 방사선 치료를 받고 병원을 계속 운영했으나, 2007년 척추암을 진단받고 개인병원을 닫는다. 현재는 건강한 상태로 신앙생활에 힘쓰고 있다.
☞저자 약력
1972년 독엘 에센 병원 간호보조사로 취업
1978년 튀빙겐 대학 의과대학 입학
1981년 뇌종양을 앓던 남편 유르겐과 결혼
1987년 뇌종양 재발로 남편 사망
1993년 튀빙겐에서 개인병원 개원
2005년 남편과 유사한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
2009년 척추암을 이겨내고 독일에서 생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