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우울하고 삭막한 도시, 그 속의 사람들!

강영숙의 세 번째 소설집『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무심한 어조로 삶의 이면에 숨겨진 불안과 고통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작가 강영숙이 두 번째 단편집 이후 5년 만에 펴낸 창작집이다. 2004년 여름부터 꾸준히 발표해온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고정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기 정체성의 경계를 설정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에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도시라는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지루하고 권태로운 풍경이 등장한다. 도시 안에서 반복되는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는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버리지만, 작가는 그것을 오히려 일상의 중요한 부분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우울한 도시의 삶이 그로 인해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또한 인물들은 시종일관 ''쿨''한 태도를 유지한다. 무심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들. 하지만 그들은, 실은 도시와 함께 나름의 우울을 앓고 있다. 작가는 우울을 견디기 위한 방법으로,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지만 한번쯤은 꿈꿔볼 만한 장면들로 ''쿨''한 유머를 선사하며 또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