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생의 한순간을 기억하는 장기나무 식기장처럼...

이현수의 두번째 소설집『장미나무 식기장』. 뛰어난 직관과 안목으로 포착한 삶의 편린들을 그려내는 작가 이현수. 화려한 미사여구로 장식하지는 않았지만, 단단하고 오래된 낡은 가구처럼 마음속 한켠에 자리잡는 그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찰나에 스러지고 마는 생의 한순간을 오롯이 담아낸 단편들이다.

이번 작품집에서는 호주제, 부동산 투기, 기러기 아빠, 종갓집 종부, 이웃과의 소통 부재 등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각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특히 ''모성''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 어머니들이 눈에 띈다. 어머니들은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도,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추풍령]의 어머니는 딸을 버려둔 채 추풍령고개를 넘어 유령처럼 떠돌고, [장미나무 식기장]의 어머니는 동물적 감각으로 장사를 하며 사람들을 부리는 여장부로 살아가고, [남의 정원에 함부로 발 들이지 마라]의 어머니는 주식의 귀재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남편이 만든 애물단지 책상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딸을 키워준 계모에게 허리를 깊이 숙인다. 작가는 이렇게 어머니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대신, 그들 각자에게 영혼의 자존을 찾아준다.